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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새 진보정당’은 <녹색><사회>당 (장석준)
전진  2011-05-20 13:06:54, H : 1,205, V : 172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연석회의를 무대로 ‘새 진보정당 건설’ 혹은 ‘진보대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당 건설 과정 치고는 지나치게 긴장도가 떨어지고 무게도 없다. “아래로부터”, “대중의 참여로” 운운하는 말들은 많지만 전형적인 상층 협상만 계속된다.

이것은 지금의 ‘통합’ 논의가 애초부터 단추를 잘못 꿴 탓이다. 이것은 오로지 지난 선거 결과 평가 그리고 다음 선거의 타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실제로는 ‘총선 선대본 구성’으로만 보이는 목표를 ‘정당 건설’이라 포장하며 추진하는 상황이 작년 지방선거 이후부터 거의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결정을 해도, 어떤 성명을 내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는커녕 속 보이는 상투적 정치 행위로만 다가오는 것이다. 각 정당 안에서 혼란만 가중되고 막상 정당 간 논의 자체는 가닥을 잘 잡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필요한 정당’과 ‘필요하지 않은 정당’

연석회의의 목표가 정말 새로운 ‘정당’ 건설인가? 그렇다면 그 논의에는 지금 빠져 있는 한 가지 쟁점이 의제로 추가되어야 한다. 그것은 새로 건설될 진보정당이 2010년대의 한국 사회에 ‘필요한 정당’이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정당은 선관위에 등록만 하면 존재할 수 있다. 선거에 후보를 내고 당선자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정당들 중에는 당대의 그 사회에 ‘필요한 정당’이 있는가 하면 ‘필요하지 않은 정당’도 있다. 그럼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제도권 진출 여부나 의석 수가 중요한 한 요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주된 기준은 아니다. 당장은 원내 의석이 없더라도 그 사회에 ‘필요한 정당’일 수 있고 그래서 언젠가 원내 진출은 물론 주요 정당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닐 수 있다. 2004년 이전의 민주노동당은 그 좋은 예다. 정반대로, 의석이 있더라도 아무런 잠재력도, 하다못해 지속 가능성조차 갖지 못한 정당도 있을 수 있다. 대한민국 의정사에 명멸한 수많은 원내 군소정당들은 이에 속한다.

주된 기준은 무엇보다도 ‘권력과의 관계’다. 정당은 ‘현 권력의 담지자 혹은 그 의미 있는 참여자’이거나 아니면 ‘현 권력에 대한 의미 있는 반대 세력’, 더 나아가 ‘미래(‘차기’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없는) 권력의 의지와 비전을 갖추고 이를 준비하는 세력’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필요한 정당’이고, 이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정당’이다. 정당이 무엇보다도 권력을 획득하자는 조직이기에 그렇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현 권력에 대한 입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명박 정권은 이미 레임덕에 빠졌고, 대선 국면은 벌써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2012년에 등장할 새 권력에 대한 입장이다.

안타깝게도 진보정당이 2012년의 그 새 권력이 될 가능성은 전무하다(필자가 2012년 지구 대격변 같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까지 염두에 둘 이유는 없을 것이다). 새 권력은 다시 한나라당의 것이거나 아니면 범민주당(국민참여당까지 포함하는)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어떤 정당이려면 결국 다음의 두 길 중 하나를 분명히 선택해야만 한다. 하나는 범민주당의 집권 과정에 적극 참여해 미래 범민주당 권력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범민주당 권력이 등장하더라도 (물론 한나라당 권력이 등장할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권력에 맞선 적대자로서 성장하면서 독자적인 미래 권력 전망을 다져가는 것이다.


진보신당 내 중간-통합파의 정치적 기회주의

진보신당 안에 ‘통합파’와 ‘독자파’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진보신당 안에 새 정당 건설 자체를 부정하는 흐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독자파’는 적절한 명칭이 아니다. 오히려 새 정당 건설의 방향을 서로 다르게 잡는 세 통합파가 있다고 봐야 한다. 굳이 말하면, ‘우-통합파’가 있고, ‘중간-통합파’가 있으며, ‘좌-통합파’가 있다.

우-통합파는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까지 통합 대상으로 보는 흐름이다.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주장하는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중간-통합파는 민주노동당을 주된 통합 대상으로 바라본다. 좌-통합파는 민주노동당을 통합 대상으로 열어놓고는 있으나 ‘도로 민노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진보신당 정기당대회 결정을 관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흐름이다. 이들은 연석회의 참여 단체 전체가 이러한 원칙에 합의하는 데 실패한다면 일단 이에 동의하는 세력만으로 새 진보정당 건설을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필자는 이 중 좌-통합파에 속한다. 이러한 필자의 입장과 우-통합파 사이에는 무슨 강 정도가 아니라 대양(大洋)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중간-통합파보다는 우-통합파를 존중한다. 왜냐하면 후자는 자기들 나름대로 한국 사회에 ‘필요한 정당’이 되기 위한 한 길을 선택하고 그것을 대중 앞에 분명히 내세우지만, 전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간-통합파에게서 필자는 가장 나쁜 기회주의의 냄새를 맡는다.

우-통합파는 범민주당을 미래 권력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 국민참여당과 합당을 해서든 연립정부를 수립해서든 그 권력에 참여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신당 내 우-통합파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 내 다수의 입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장래의 통합정당은, 더 이상 ‘진보정당’이라 불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 상황에서 ‘필요한 정당’일 수는 있다.

반면 좌-통합파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든 범민주당이 집권하든 그 미래 권력에 맞서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야당으로 활동하며 성장하자는 것이다. 즉, 좌-통합파는 우-통합파가 그 일부가 되고자 하는 미래 권력에 맞설 의미 있는 대항 세력이 됨으로써 이 시대에 ‘필요한’ 또 다른 정당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이러한 지향은 진보신당 정기당대회에서 “민주연립정부에 대한 반대”라는 문구 삽입을 통해 당론으로 채택되었다.

당대회 토론 과정에서도 확인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정은 범민주당 세력과의 후보단일화 협상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 노림수는 민주연립정부 노선과는 정반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나라당 정권보다는 범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는 게 반자본주의 야당이 성장하기 더 좋은 조건이 될 것이라는 전술적 고려에 바탕을 두고 이뤄지는 것이다. 2012년에 등장할 권력에 맞선 가장 의미 있는 대항 세력이 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우-통합파와 좌-통합파는 각각 정반대 방향에서 한국 정치에 ‘필요한 정당’을 건설하려 한다. 둘은 결국에는 서로 결별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안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정당’이 무엇인지에 대해 각자 분명한 전망을 갖고 이를 실천하려 한다는 점에서 어쨌든 상대방의 진지함을 존중할 수는 있다.

문제는 중간-통합파다. 이들은 새 정당과 미래 권력의 관계에 대해 답변을 회피한다. 이들의 주된 통합 대상은 민주노동당인데, 지금 민주노동당의 다수는 범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추구한다. 큰 방향에서 진보신당 내 우-통합파와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간-통합파의 시나리오에 따른 새 당에서는 범민주당 권력을 수립하고 이에 참여하려는 입장이 다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중간-통합파는 이런 빤한 사태 전개를 애써 외면한다. 그들이 우-통합파나 민주노동당 다수파의 전망에 반대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다. 미래 권력에 대한 입장은 총선 이후에 결정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말만 한다. 그럼 총선 이전에 만들자는 소위 진보대통합당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정당은 미래 권력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없이 총선에 뛰어드는 정당이 되는 것인가?

이러한 정당이야말로 ‘불필요한 정당’이다. 원내 의석을 10석을 얻든 20석을 얻든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정당 간판을 내건 총선 선대본일 뿐이며, 멀지 않은 시기에 정리 혹은 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총선을 일단 넘기고 나면 결국 당 내 다수의 뜻대로 범민주당 집권연합에 합류하게 되든가 아니면 대선을 앞두고 다수파와 소수파가 다시 분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남을 속이는 게 아니라면 자신을 속이는 길일뿐이다. 좋게 보아줘도, 오로지 국회 의석만을 위해 책임 있는 정치적 선택을 어떻게든 총선 이후로 미루려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행태야말로 정치가로서 책임 윤리의 회피다. 이념이니 노선이니 하는 문제를 다 떠나서 이러한 기회주의적 흐름은 역사의 작은 일화나 각주 외에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차기 집권 연합이 할 수 없는 것들

지금 우리가 회피하지 말아야 할 것은 2010년대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진보정당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당이어야 하는지 묻는 일이다. 어떠한 비전을 갖고 어떠한 실천 노선으로 2012년 이후의 미래 권력에 맞서며 성장해갈지 그려보아야 한다.

그러자면 2012년 이후의 미래 권력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따져봐야 한다. 새 진보정당은 곧 이 미래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가능성의 지대를 확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예측에서 장래의 여당이 한나라당일지 범민주당일지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미 한나라당은 잇단 중간선거(지방선거, 재보선)의 신호에 반응하며 이명박 정부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념적 위치를 점점 더 자유주의 쪽으로 옮기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거듭된 실정 때문에 일정하게 왼쪽으로 이동한 유권자 여론의 중심 지대(the Centre)에 새롭게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미지와 담론만 보면 여전히 범민주당 세력이 한나라당에 비해 더 ‘진보적’인 것 같다. 거의 ‘유사-사회민주주의’ 정도쯤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민주당의 ‘좌클릭’이라는 식으로 보는 것은 정확한 게 아니다. 범민주당은 또 그들 나름대로 유권자 여론의 중심 지대 이동에 적응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즉, 한나라당과 범민주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전형적인 중간 지대 선점을 통한 다수자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 중간 지대는 이미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그 핵심 축은 이명박식 ‘성장’을 회의하게 된 한국 사회의 중간층이다. 민주화를 지지했었고 IMF 위기로 일자리 사수를 생명과 같이 여기게 되었으며 신자유주의 전성기에 빚을 얻어서라도 자산을 형성한 계층 및 세대다. 이들이 이명박식 ‘성장’에 등을 돌린 것이 현재 이른바 ‘복지’ 여론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한나라당, 범민주당은 차기 집권을 위해 이들 중간층을 누가 더 잘 대변할 수 있는지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차기 정권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이미 어느 정도는 예측해볼 수 있다. 설령 민주연립정부를 추구하는 구 진보 세력 일부가 범민주당 정권에 참여하게 되더라도 이 경계선은 크게 이동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집권하든 그들이 대변할 유권자의 중심 지대가 이미 분명하고, 어떤 정당의 정권이냐는 단지 그 정책적 대변 과정에서 미세한 차이만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누가 됐든 다음 정권은 이명박 정부가 ‘성장’을 이야기하는 만큼은 ‘복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실제 복지 지출이 이전의 증가치에 비해서는 더 크게 늘어날 것이다. 적어도 국가 복지 정책의 항목은 더 늘어날 것이다. 차기 정권은 이런 일들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차기 정권이 비정규직 문제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줄이려 시도할 수는 있을지언정 민간부문 노동시장을 건드리기는 힘들 것이다. 우선 그간 노동 유연화를 통한 축적에 익숙해진 자본 측이 완강히 반대할 테고, 중간층 역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 시스템 전반을 흔드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차기 정권은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의 토건 중심 성장 정책은 일단 중지시킬 것이다. 또 다른 대규모 토건 카드를 들이밀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어쨌든 4대강 사업보다는 훨씬 세련된 외양을 띨 것이다. 이 정도는 차기 정권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러나 차기 정권이 핵 발전을 줄여나가거나 에너지 전환 정책을 적극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후쿠시마 사태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반핵 여론이 자라나고는 있지만, 아직도 유권자 여론의 중심 지대에서는 이것이 중심 의제로까지 부상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금융, 교육, 주거 등 한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들마다 차기 정권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전망해볼 수 있다. 사회 세력 간 대립 구도와 기존 기득권 구조가 명확한 쟁점일수록 차기 정권이 할 수 있는 것 너머의 지대는 보다 넓을 것이다. 즉,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야당이 ‘필요’할 여지가 더욱 커질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새 진보정당’은 ‘녹색’‘사회’당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차기 정권의 한계와 가능성은 이 정권을 낳을 2010년대 초반 한국 사회 다수자 연합의 한계와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새 진보정당의 주역이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즉, 새 진보정당의 토대는 현재의 다수자 연합 바깥에서 찾아야 한다. 그 ‘바깥’이란 지금 유권자 여론의 중심 지대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계층으로는 불안정 노동자들이고, 세대로는 신자유주의의 폐허 위에 내던져진 20-30대 초반이다.

이러한 새 진보정당의 주체적 측면에 대해서는 이미 필자도 한 차례 글을 쓴 적이 있고(‘진보 후속 주체의 길을 여는 정당’을 주장했었다),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많은 동지들이 비슷한 입장을 제출한 바 있다. 그리고 그 글들은 하나같이 다, 이러한 주체 구성이 결코 더 약하고 더 비주류인 특정 계층에 편향되자는 게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등대정당’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제까지의 진보정당 지지층 형성 전략보다 더 원대한 기획을 주창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을 형성할, 다수자 연합을 새롭게 구성할 출발점을 다시 잡아보자는 제안이다.

물론 구 민주노동당의 조직 기반이었던 기존 조직 노동자 대오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현재 한국 사회의 중간층 일반과 구별되지 않는다. 이들을 자극하고 실체화하기 위해서도 새 진보정당은 이들 바깥에서 새로운 충격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 주체 재형성 전략에 대해 이렇게 심심치 않은 대거리가 오고 간 것과는 달리 새 진보정당의 이념, 노선 측면에 대해서는 의외로 별 이야기들이 없었다. 이에 대해 김현우 동지는 ‘녹색사회당’이라는 제안을 던졌다. 그간 진보신당이 표방해온 지향 중 ‘평등’과 ‘생태’를 더욱 강조하자는 것이고, 더 뭉뚱그려 말하면 ‘생태주의’와 ‘사회주의’의 좌파정당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제안에 적극 동의한다. ‘진보 후속 주체의 길을 여는 정당’ 혹은 ‘불안정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녹색’‘사회’당이어야만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성장주의’라는 오래된 깃발에 맞서

이것을 위의 논지의 연장선에서 이야기해보자. 2012년 정권 교체를 앞두고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유권자 여론의 중심 지대는 박정희 정권의 자본주의 산업화 이후 한국 사회에 정착된 지배 이데올로기의 중핵과 단절한 게 아니다. 그 중핵은 바로 ‘성장주의’다.

여기에서 주의할 게 있다.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의 그 ‘성장’은 GDP 등의 수치로 나타나는 경제의 양적 변동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와 연동된 대중적 기대와 열망, 상식이다. 항상 수출 대기업 실적으로 표상되는 자본 축적의 지속 그리고 그에 의존하는 일자리 안정과 확대이고,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이며, 한국적 경기 조절 수단인 토건 개발의 보장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박정희식 자본주의 산업화의 경로의존성을 그대로 밀고 나가자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신자유주의 금융화 역시 이러한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해서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가령 부동산 투기 중심의 금융화 경향).

물론 여론 지형이 이명박식 ‘성장’에 반대하고 ‘복지’에 새로 강조점을 찍게는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식 ‘성장’은 ‘성장주의’의 여러 정책적 표현 형태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요즘의 ‘복지’는, 과거의 ‘민주화’가 그랬던 것처럼, ‘성장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과 공생하거나 이에 부속될 수 있는 담론이다. 성장을 전제로 그 과실을 나누겠다는, 즉 ‘(재)분배’ 일변도의 ‘복지’ 담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 자체를 폄훼할 이유는 없다. 오직 구제받을 길 없는 교조주의자들만이 이러한 미세한 균열이나 변동조차 사회 변화의 중대한 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좌파 정치 세력이라면, 과거에 ‘민주화’의 열망을 혁명의 전망으로 연결시키려 했던 것처럼, 현재의 ‘복지국가’ 붐이 진정한 ‘사회국가’(참고 : <사회 국가 - 한국 사회 재설계도>, 후마니타스, 2007) 건설의 실마리가 되도록 적극 개입해야 한다.

그 개입의 지점을 김종철 동지는 ‘탈자본(주의) 구조변혁’의 필요성(“구조변혁 없이 복지국가 없다”)과 그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식화했다. 필자는 위에서 말한 ‘성장주의’와 관련하여 이를 ‘전환(판갈이!)’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한국 자본주의의 경로의존성에 대한 구체적인 단절들 없이는 실질적이며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는 불가능하다는 것, ‘전환’ 없이는 ‘복지’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의 지점들은 물론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차기 정권 아래서는 물론이고, 지금 당장이라도 한국 사회에 그것을 제기할 정당이 필요한 가장 시급한 쟁점들을 몇 가지 뽑아볼 수는 있겠다.

우선은 노동 세계의 ‘전환’이다. 일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은 자들은 초과 노동에 시달려야 하고 나머지 다수의 노동자들은 떠돌이 신세가 되어야 하는 현재의 노동 체제를 바꾸지 않고 ‘복지’를 말할 수는 없다.

한 편으로는 이제 임금 인상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운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설득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 체제 전반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정당이 필요하다. 새 진보정당은 바로 그런 당이어야만 한다.

다음으로 생태적 ‘전환’, 그 중에서도 에너지 체제의 ‘전환’이다. 노동자 없이 자본주의가 존립할 수 없는 것처럼, 동력원 없이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한국 자본주의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화석 연료를 태우며 성장해왔고 이제는 그 자리를 핵 발전으로 대신하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사회는 이와는 다른 에너지 기반을 갖춰야만 한다. 그것 없이는 새로운 사회도 없다.

이제 막 시작된 후쿠시마 ‘이후’의 시대에 누구보다 먼저 에너지 체제 ‘전환’을 주창하고 이에 따른 경제 사회 체제 전반의 구조변혁을 제기할 정당이 필요하다. 이게 새 진보정당의 몫이다.

노동 세계든 에너지 체제든 이러한 ‘전환’은 결국 재벌 대자본이 최정상에서 군림하고 있는 경제 권력 구조의 ‘거대한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경우에든 거대한 장벽으로 버티고 있는 것은 기존 체제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경제 권력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아니라, 민주당이 아니라 이 진정한 대적과 맞서 싸울 정당이 필요하다. 이런 걸 하자는 새 진보정당이 아니라면 굳이 한국 정치사에 정당명 하나를 더 추가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시급한 과제들의 대중적 표상으로서 ‘녹색’‘사회’당 제안은 충분히 수긍할만한 것이다. 단지 얕은 정치술에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생태(주의)’와 ‘사회(주의)’로부터 한국 사회의 오래된 깃발 ‘성장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깃발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 21세기의 두 번째 10년대에 한국 사회에 ‘필요한’ 새 진보정당은 ‘녹색사회당’이다.


선거 연합은 선거 연합으로, 당 건설은 당 건설로

그런데 지금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면 뜬금없다는 핀잔이나 듣기 십상이다. 이게 연석회의의 통합 논의랑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그렇다. 별로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이런 논의가 한가한 이야기인 게 아니라 지금 연석회의에서 진행되는 식의 통합 논의가 이 시대에 ‘필요한’ 새 진보정당의 출발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연석회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논의의 장 자체가 새로 열려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2012년 총선에 가장 적절히 대응할 ‘선거연합’ 결성과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진보‘정당’ 건설을 동일시하면서 이 모든 도착과 혼돈이 시작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보 진영의 총선 대응은 그것대로 실패하고 ‘새 진보정당 건설’은 또 그것대로 길을 잃게 될 것이 빤하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사물과 사태에 제 이름을 찾아주면 된다. ‘선거 연합’ 결성은 선거 연합 논의로 풀고, ‘정당’ 건설은 정당 건설 논의로 풀면 된다. 그리고 그에 맞춰 지금의 연석회의가 선거연합 논의의 장으로 더 적절할지 아니면 ‘녹색사회당’과 같은 진지한 논의로 그 의제를 심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하면 된다.

만약 후자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하루 빨리 연석회의를 선거연합 논의의 장으로 전환하고 진보신당 안과 바깥에서 ‘새 진보정당’ 건설 논의를 새로 시작하면 된다. 잘못 시작된 통합 논의에서 해방되어, 우리 사회, 우리 세대에게 ‘필요한’ 진보정당 건설의 토론과 실천을 이제 비로소 제대로 시작하면 된다.


Kailee  (2011-08-15 15:22:12)

Was totally stuck until I read this, now back up and rnu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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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hoka  (2011-08-18 20:4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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