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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진보정당, 소수자 운동에 대한 시선부터 혁신해야 (고미숙)
전진  2011-05-20 13:02:38, H : 1,064, V : 176


고미숙 (진보신당 서울 당원)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기준으로 좌파냐 우파냐를 판단하던 시절이 있었다. 별로 멀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다.

하지만 내부의 정파 투쟁에 지친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다, 좌파답게 운동하자”는 부푼 희망을 품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보니 상황이 바뀌었다. 오래 입어서 편안한 옷처럼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감수성들이 사실은 전투용 복장이라서 몹시 무거웠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한 숨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정파 장막 뒤에 숨어있던 빈약한 감수성, 장막이 사라지자 앙상하게 드러나다

2008년 진보신당 창당 직후 한 무리의 여성들이 모였다. 진보신당의 탄생과 더불어, 진보정당 여성운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의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오갔던 이야기들은 우리들이 익히 짐작할만한 얘기들이었다. 새로운 정당이 탄생했어도 여전히 여성들의 참여는 저조하고 활동가층은 얇은데 원인 분석 좀 제대로 하고 방향 잘 잡아서 여성정당 만들어보자, 그런 취지의 작당들이 오갔고 분위기도 좋았다.

그런데 모 지역에서 온 동지가 이런 사람들이랑이라면 당을 같이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여성 참여와 할당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더니, “우리는 다 이루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말 다 이루었을까? 민주노동당 시절, 여성정치발전기금을 인건비로 돌려쓰는 사건이 있었다. 그 일은 우파의 감수성 없음을 드러내는 증거의 하나로 회자되었고, 중앙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삼기도 했었다. 그런데 진보신당에서도 똑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 일에 대해 문제 삼았을 때, 당의 재정이 취약하니 여성들도 자신들 욕심만 채우지 말고 당을 위해 일정 부분은 희생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지금도 여성정치발전기금의 일부는 당직자의 인건비로 지출되고 있다.

당 기구만 이런 것이 아니다.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일부 당원들의 폭력적인 게시물을 보고 있노라면 이 정도면 거의 패악질 수준이다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여성들에게 마치 “이래도 니들이 이 당에서 버틸래?” 하는 것 같다.

2008년 촛불정국에 벌어진 성폭력사건 이후, 게시판에서는 대대적인 성폭력 논쟁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여성들은 지쳐 떨어져 나갔다. 일부는 여성게시판을 만들어서 숨어버렸고, 일부는 나처럼 싸움을 피해 게시판을 멀리하거나 ‘클릭 절대 금지’ 블랙리스트 아이디를 몇 개씩은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거기에 더해 낙태 논쟁도 줄기차게 벌어지면서 마녀사냥을 하듯이 낙태 찬성하는 여성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 방침을 결정할 때 여성할당과 관련한 결정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여성할당을 채우지 못하면 그 선거구 자체를 날리게 만들었던 민주노동당 시절만큼의 호기도 부리지 않았고, 심지어는 남성들의 출마의 권리를 제약한다고 불만도 튀어나왔다.

물론 여성위원회를 포함해서 여성들이 자신을, 그리고 다른 여성 동지들을 정치적으로 단련시키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은 인정하더라도, 예전에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들려주고 싶다. “여성의 문제를 여성에게만 책임지우지 말고 당이 책임져라.“ 벤자민 버튼의 시계도 아닌데, 왜 시절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지.


비정규연대기금은 yes! 소수자연대기금은 부담?

2008년 진보신당 장애인위원회는 서울시당사 이전 문제에서 불거진 장애인편의시설과 접근권의 문제를 계기로 진보신당 내 장애인운동에 대한 무관심과 상근자 부재로 인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소수자연대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당시 장애인 당원들은 당의 무관심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고 있었다. 공동대표가 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는데도 휠체어 하나 드나들기 힘든 화장실 문제를 해결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고, 장애인을 대표하여 세운 공동대표에 대해 배려하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에 불편해 하고 있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활동가를 양성하고 당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소수자부문을 활성화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 소수자연대기금이었다. 그러나 이 제안은 당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후일로 미루어졌다.

그러나 그 ‘후일’은 결코 오지 않았고 소수자연대기금 얘기는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비정규기금을 만들 때는 단 한마디의 이견을 들은 바 없고 부담이 될 거라는 말도 들은 바 없다. 또 당시 확대운영위를 통해 약속했던 장애인 인권교육, 시도당사 편의시설 마련을 위한 계획 수립에 대해 점검이나 했는지 궁금하다.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 부문은, 창당 후 3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변방의 세력으로 머물러 자체적인 활로를 모색하는 형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에서 장애인과 성소수자에 대해서, 이주노동자와 여성에 대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다. 이들이 당에서 실망을 느끼고 상처 입는 만큼 당에도 상처와 피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야 할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소수자로 불리는 사람들도 자본과의 대결을 꿈꾼다

민주노동당 시절, 장애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부문은 정파투쟁에서 우파와의 대립의 최선두에 서 왔다. 덕분에 좌파의 빈약한 감수성은 종종 정파 대립 뒤에서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파라는 장막이 걷히고 이제는 온전히 자신의 감성으로 소수자인권 문제를 대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통합의 가치 기준을 말할 때 비정규투쟁과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소수자 의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소수자들은 아무렇게나 ‘대충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과 같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설마 아니겠지?

소수자운동에 대해 말할 때, 예산 없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 가난한 진보정당보다 부유한 보수정당이 편의시설은 더 잘 갖춰져 있지만 그것을 비교하는 얘기를 들어본 바 있는가?

단지, 진정성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진심은 송곳과 같아서 숨기려고 해도 느낄 수 있는 법인데 지금은 그 진심을 느낄 수가 없다. 정부와 싸움을 할 때 우리가 잘 쓰는 표현으로 예산은 가치의 문제라는 말을 상기해 주길 바란다. 아직도 예전에 했던 고민을 계속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나의 이 넋두리들에 담긴 소망은 굳이 어려운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좌파라고 자부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했던 말들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시라. 운동을 서열화시키지 말자고 했었다. 비정규투쟁, 노동운동의 중요함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것은 자본과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 소수자운동에 대해 자본주의 안에서 운신의 폭을 확장하는 것에 만족할 거라고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수자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자본과의 한판 대결을 꿈꾼다. 차별을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사적 소유와 이윤 추구에 기반한 자본주의라는 것에 대해 노동운동과 정당정치만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수자운동은 자본주의와의 대결에서 곁다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곁다리로 만드는 사람들이 나의 동지들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 그렇게 큰 소망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자본주의의 구멍은 모든 곳에 어디에나 뚫릴 수 있는 것이다.

진보대통합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먼저 드는 조건이 “가치”이다. 그런데 그 가치가 무엇인가? 보수와 다르고 진보우파와는 다른 진보신당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진보대통합이냐 독자냐, 그 기준에 소수자운동에 대한 우리만의 가치, 누구보다도 우월한 우리만의 가치를 담을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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