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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홍익대 투쟁이 남긴 것 (강현구)
전진  2011-05-20 12:45:45, H : 1,157, V : 139


강현구 (진보신당 부천당협 청년당원)

홍익대 투쟁은 2011년 상반기 최대 이슈 중의 하나였다. 50여일 동안의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의 농성은 ‘외부 세력’이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 사회에서 유령처럼 취급당하며 외면 받던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의 비인간적 처우에 대해 많은 이들을 다시 생각하게 했으며, 이 땅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조금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첫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상당 기간을 농성장에서 지내며 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연대하였었다. 농성장에서 하루를 자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고, 어떤 이는 물어보지도 않고 약속 장소를 홍익대 앞으로 덜컥 잡아버릴 만큼 너무나도 자주 홍익대 농성장에 있었고, 연대를 하였다.

그러나 이 투쟁에 대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참여하고자 했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은 필자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다.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대학생활을 겪으면서, 낯선 환경 속에서 적응하느라 어려웠었고, 상반기에 있었던 지방선거와 그 후폭풍을 겪으면서 많이 힘들었고 지쳤었다. 다시금 활기를 되찾게 해줄 무엇인가가 필요했었고, 겨울 방학 때 기타를 배우고 휴식을 취하면서 더 많은 독서를 하기로 하였다.

그러던 1월 2일. 방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날. 새로 기타를 구입하고 난 자리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는 진보신당 당원으로부터 소식을 듣게 되었다. 홍익대 청소-시설-경비 노동자 170명이 해고되었으며, 내일부터 총장실 점거에 들어간다는 소식이었다.

무려 170명이 단칼에 해고되었다는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새로 산 기타를 너무나도 치고 싶었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노동자 170명이 해고되었다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다음날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일찍 일어나 아침 7시 예정된 시간에 홍익대로 향했다.


농성 첫날 - 총장실 앞 점거

예정된 시간에 도착하니 홍익대 총장실이 있는 건물 1층에는 해고 노동자 분들과 연대 동지들이 집합해 있었다. 모두 다 하나씩 조끼를 걸치고 함께 총장실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해고 노동자 170명과 연대 동지들이 모여 올라가자 총장실과 같은 층에서 일하던 교직원들은 갑작스러운 일에 모두 하나 같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총장은 계단으로 도망가던 중 올라오던 노동자들과 연대 대오를 보고 놀라 총장실로 도망갔다. 총장이 도망가 숨은 총장실 앞에서 노동자들과 연대 대오는 총장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점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학교 측은 계속하여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다. 홍익대 청소-시설- 경비 노동자들은 최대 10년 동안 상당 부분의 업무를 홍익대에서 지시 받으며 홍익대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이들 노동자들은 홍익대 소속이 아니다. 학교 밖의 용역업체 소속으로 되어있으며, 일종의 파견 형태로 학교에서 일을 하였다. 실질적으로 이들 노동자들을 고용한 이들은 홍익대이지만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학교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고용형태는 점거 첫날부터 계속 학교의 책임 면피 근거로 사용되었다. 학교로부터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고 복직을 요구하자 교직원들은 “당신들은 우리와 상관 없는 사람들이다. 당신들 우리 학교 소속도 아니면서 왜 여기 오느냐”라는 말을 반복하였다. 각종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도 학교는 앵무새처럼 위와 같은 말을 반복했을 뿐이다.

학교는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려고 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을 쫓아낼 수 있을까, 대충 덮어놓고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듯하였다. 교직원들은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감히 300만원 받는 교직원들에게 90만원 받는 사람들이 대들어”라는 인격 모독적 발언을 일삼았다. 연대 동지들에게는 “당신들 어디 학교 학생이냐”라는 말을 했으며, 교직원이 학보사 기자를 사칭하여 불법 채증을 하고, 취재 온 기자들을 폭행하기도 하였다.

총장은 계속 총장실에 숨은 채 “나와라”라고 외치는 노동자들과 연대 대오의 외침을 무시했다. 그리고 심지어 탈출 시도를 감행하여 이를 저지하려는 노동자 및 연대 대오들과의 물리적 충돌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 총장실 앞을 점거하며 총장이 직접 책임질 것을 노동자들과 연대 대오들이 요구했지만 교직원들과 총장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총장실 앞에서의 점거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노동조합 측은 결국 총장을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아프다며 소방서에 연락까지 하여 구급대를 부르며 탈출을 시도했던 홍익대 장영태 총장은 노조에서 풀어주자 웃으면서 걸어나갔다. 노동자들과 연대 대오는 총장이 그렇게 건물을 빠져나간 후 1층 사무처에 결집, 그곳을 점거하며 50여일 동안의 기나 긴 농성을 시작하였다.


농성의 시작, 노동조합의 힘

노동자들이 점거한 사무처는 매우 추웠다. 노동자들이 점거하기 이전에 사무처는 겨울에도 매우 더운 곳이었다고 한다. 껴입은 옷을 벗고 들어가야 할 만큼 난방을 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농성이 시작되자 학교는 난방을 끊어버렸다. 농성장을 지켜야 했던 노동자들이 여기저기서 빌려오고, 연대온 이들이 주고 간 난방기들과 핫팩, 전기장판을 통해 춥고 추웠던 올해 겨울을 이겨내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추위도 해고당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총장실 점거 날 이후 농성 기간 동안 내내 해고당한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한편 노동자들을 회유하려는 움직임들도 농성 기간 내내 있었다.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해고를 통해 생계가 많이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이를 간파한 학교와 용역회사 측은 노동자들에게 개별 접촉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심화되고 계속된다면 홍익대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분노에 찬 노동자들이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움직이거나, 노동자들이 학교와 회사의 회유에 넘어가 이탈하기 시작한다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힘을 모으는 것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노동조합으로 힘이 모아지지 않고 심지어 노동조합이 무너진다면, 사회적 약자인 이들 노동자들의 요구는 관철되지 않을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분노를 무조건적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학교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서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도 노동조합을 통해 최대한 힘을 모아서 하고자 하였다. 학교 측, 혹은 용역 회사 측에서 노동자들에게 개인별로 연락을 하며 노동자들이 농성장을 이탈하게 해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는 시도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개인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다른 이들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최대한 노동조합을 통해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노동조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자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 노동자들은 사회적으로 매우 낮은 위치에 처해있다. 이 사회에서 ‘청소하는 사람’, ‘경비 일을 보는 사람’은 누군가를 경멸하는 언어로 종종 사용된다. 농성장에 취재온 기자들에게 몇몇은 자신의 신상을 절대 밝히지 말아 달라며 스스로의 직업을 부끄러워 할 만큼 이 사회에서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은 사회적으로 매우 낮은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낮은 위치 때문에 노동자들은 부당한 대우를 당해야만 했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청소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도 못한 월급 75만원, 하루 식대 300원을 받아가며 일했으며, 자신의 일이 아닌 미술 입시 시험 준비를 하는 일까지 해야 했다.

경비 노동자들은 역시 자신의 일이 분명히 아닌 교수 이삿짐을 옮기는 일과 화단을 정돈하는 일까지 해야 했다. 이들 노동자들의 휴식 공간에는 냉난방시설이 없어서 학생들이 쓰다 버린 것을 사용해야 했다. ‘아줌마’, ‘썅X'와 같은 인격 모독적 발언을 듣는 것은 물론이었다. 이러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었기에 노동자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우기 시작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한 유명한 사상가의 말이 있다. 그 말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홍익대였다.

그 전에 노동자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당한 요구를 해도 돌아오는 것은 면박뿐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만들고, 농성을 시작하자 그 누구도 노동자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여태까지 당해왔던 부당한 대우에 대해 교직원들을 향해 “당신들이 잘못했잖아. 당신들이 책임져!”라는 말을 아주 당당하게 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힘을 합하자 노동자들은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홍익대를 상대로 힘차게 싸울 수 있었다. 심지어 학교의 최고 권력자인 이사장을 향해서도!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된 것이다.


연대의 힘

한편 홍익대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에는 수많은 이들의 연대가 있었다. 총장실 앞을 점거했던 첫 날부터 언론 3사에 투쟁 소식이 전해졌다. 현장에 있는 이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현장 소식을 알리기도 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많은 이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지지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연대 물품을 보내기도 하였다.

첫 날, 둘째 날까지는 정당과 노동조합에서 주로 연대 물품을 보냈었지만, 그날 이후부터는 일반 시민들 개개인이 찾아와서 지지의 한마디와 연대 물품을 전달하였다. 홍익대 앞을 지나다가 생각났다며 과일 상자 하나를 들고 온 이들부터, 훌륭한 세상 공부가 될 것이라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농성장을 찾은 아버지까지, 홍익대 투쟁은 세상 모든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폭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고, 이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이들과 연대를 나누었다.

홍익대학교는 재단 적립금만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4,800억이나 될 정도로 큰 대학이다. 이러한 대학과 싸우는 데에 월급 75만원을 받는 이들만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홍익대학교 총학생회는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이들을 ‘외부세력’이라며 비난하였다. 하지만 ‘공정’과 ‘정의’는 모든 일에서 중립을 지킨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강자와 약자가 싸울 때에는 약자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일일 것이다.

홍익대학교 투쟁에 지지하고 연대했던 많은 이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정당한 행동들이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힘들어할 때 계속 싸우도록 해주는 원동력이었고, 학교가 조금이라도 더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많은 이들의 연대는 힘없는 노동자들이 4,800억의 재단 적립금을 가진 홍익대와 싸울 수 있게 하는 크나큰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단단한 노동조합과 강력한 연대는 학교와 용역회사를 크게 압박하게 하였다. 학교와 용역회사의 회유에도 노동자들은 대오를 흩뜨리지 않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뭉치고 싸움을 지속하였다. 강력한 연대는 학교와 용역회사가 변명과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수세에 몰리도록 만들었다.

노동조합 창립식 당일, 창립 행사를 방해하려고까지 하며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던 학교, 그리고 용역회사 측은 결국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임금도 최저임금 이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농성 49일째이던 2월 21일 용역회사와 노동조합은 해고자 복직, 임금 인상, 노동조합 인정 등에 대해 타결을 하였고, 다음날 노동자들은 원하고 원하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많은 것을 남긴 홍익대 농성

“파업은 노동자들의 축제이다.” 홍익대 농성장을 지지 방문했던 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말이다. 어떤 이들은 파업, 농성에 대해 부정적인 연상을 하고는 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여태까지 억압되어 할 수 없었던 말들,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러한 저항의 현장이다. 홍익대와의 싸움을 하는 동안 홍익대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은 너무나도 당당했고, 웃음을 항상 잃지 않았으며, 즐거워했다.

홍익대 농성에 연대하느라 기타를 배우고 많이 쉬며 책을 읽고자 했던 방학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홍익대 농성이 끝나자 방학은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홍익대 농성은 필자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남겼다. 농성하는 이들과 함께 하며 항상 즐거웠고, 당당하게 학교, 용역회사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책에서만 볼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것은 이 사회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비록 나의 부모님과 같은 ‘어머님’, ‘아버님’에 대한 동정적 시선에 머무르는 듯한 모습도 종종 보여서 아쉬웠지만, 노동자들의 저항의 현장에 이렇게 많은 관심과 지지가 있었던 적도 없었을 것이다. 홍익대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의 싸움을 통해 이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일하는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다. 홍익대 싸움의 이야기는 이제 더 많은 이들의 이야기에 오르내리며, 억압의 현장에 있는 이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며 싸울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사례로 남을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50%이며, 신규 취업자는 무려 80%가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이 비율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은 더욱 고통스러워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며 비정규직의 아픔을 알렸던 홍익대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비정규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아주 작은 ‘희망’이었다.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이 사회에, 모두가 패배감에 힘들어하는 이때에 홍익대는 이길 수 있다는 작은 ‘희망’ 하나를 남기었다. 비정규직이 늘어날수록 홍익대와 같은 저항하는 ‘희망’들도 그만큼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이러한 ‘희망’들이 꺾이지 않도록, 이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저항의 현장에서 끝까지 함께 하자. 이들의 승리의 기록들이 쌓일수록 이 사회의 ‘희망’의 크기는 더욱 더 커질 것이다.


이름   비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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