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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혁신 없는 통합은 무의미하다 (이장규)
전진  2011-02-17 16:55:55, H : 1,125, V : 167


이장규 (진보신당 경남도당 당원)

지난 1월말에, 인천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GM대우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창원의 GM대우 공장 앞에서 선전전을 하기 위해 내려온 적이 있다. 당시 그 선전전에 참가한 이들은 인천의 비정규직지회 조합원과 창원의 정규직 활동가 및 진보신당 당원들이었다. 경남의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임원의 경우, 진보신당 당원이고 미조직비정규담당인 금속노조 부지부장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노동운동을 포함한 진보운동 전반의 위기상황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이야기되어왔다(운동 전반이 위기를 겪고 있지만, 창원에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노동운동을 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객관적 조건의 위기 이전에 주체의 위기이다. 물론 객관적 조건도 단기적으로만 따지면 만만치는 않다. 97년 이후로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이나 이명박 정권의 폭압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객관적 어려움은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로, 한국 사회는 과거와는 달리 사회경제적 신분상승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으며 더 이상 개인적인 노력이 아니라 계급적 단결을 통한 구조적 변화로써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경제 성장을 기대하고 뽑아준 이명박 정권의 실상은 이른바 개혁파만이 아니라 보수파들 또한 서민경제의 개선에는 철저하게 무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운동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이런 상황은 오히려 구조적/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계급의식의 급진적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살기가 팍팍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미친 듯이 장시간 노동을 하거나 맞벌이/투잡/알바를 하고 자격증이나 스펙을 쌓는 등 개인적인 자기 혹사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대로 가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본인들도 느끼고 있으면서도, 비정규직이나 영세자영업자들은 집단적 단결을 거의 이루지 못한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한마디로,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 등 현재의 조직화된 주체 중 그 누구도 그들에게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노동운동의 위기의 핵심은 대표성의 위기이며 재생산의 위기이다. 10%도 안 되거니와 상대적으로 조건이 훨씬 좋은 대기업 정규직에 집중되어 있는 현재의 노동운동은 결코 비정규직이나 (사실상 노동자인) 영세자영업자 등을 대표하지 못한다. 또한 조직이 포괄하는 주 대상이 대기업 정규직인 한, 그런 곳일수록 신규 고용은 거의 없으므로 조직의 단순재생산조차도 담보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말로는 누구나 위기를 말하면서도 이를 극복하려는 실제적인 노력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래도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운동 전반을 혁신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운동의 혁신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고, 마치 진보정당의 분열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고 분열만 해소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스스로의 문제점은 돌아보지 않고 엉뚱한 곳에만 핑계를 대고 있다면. 지나친 이야기일까?

진보의 재구성은 곧 진보의 혁신이다

진보신당의 창당은 어떤 의미에선 이러한 운동의 위기에 대한 반응의 일종이었다. 겉보기만으로는 북한에 대한 입장 차이 등 이른바 종북주의와 패권주의가 원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의 근원은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는 왜 나타났는가? 그것은 이미 일정 정도의 입지를 확보한 자신들의 알량한 기득권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국가보안법을 말하면서, 패권주의라면 몰라도 종북주의는 지금도 여전히 탄압을 받고 있는데 무슨 입지를 확보했다는 것이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속마음이 아니라 밖으로 표출되는 그들의 주장은 연북 평화의 수준이며 이는 이미 상당한 입지를 확보했다. 민주노동당의 주류 세력이 민주당에 매우 친화적인 것은 이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의 주류세력은 그들이 내세우는 말이 아니라 실천의 차원에서는 운동의 혁신에 거의 무관심했다. 게다가 요즘에는 이미 말했듯이 말로조차 혁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 내에도 진지하게 운동의 혁신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적어도 현재의 주류 세력이 운동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고민하고 가난한 이들과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는 별로 생각되지 않는다. 진보운동 내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관심사일 뿐, 대변되지 못하는 수많은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 및 청년들을 묶어세우려는 노력을 어디서 하고 있는가? 서두에 언급한 일화는 이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신당이 창당 당시 적어도 말로나마 민주노총과 북한에도 할 말은 하는 정당, 기존의 알량한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진보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정당을 표방한 것은 그 방향성 면에서는 매우 타당한 것이었다. 진보의 재구성은 곧 진보의 혁신이며, 이것만이 기존 조직노동이나 운동권이 포괄하지 못했던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중장기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미흡하나마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현재 진보신당의 당원 중 절반은 구민주노동당 출신이 아닌 바, 혹자는 이들을 촛불에 취한 자유주의자쯤으로 폄하하지만 필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이야말로 기존의 운동권이 포괄하지 못했던 대중들 중 일부가 아닌가? 물론 그들 중 상당수는 진보적인 관점을 제대로 습득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는 당원 교육 등에 무관심했던 당의 잘못이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현재 이른바 통합 논의에서도 그다지 고려되지 않는다. 미흡하지만 나름의 성과를 아예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신당 스스로가 철저하게 반성해야

신입당원 문제만이 아니다. 위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주류세력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그간 진보신당의 지도부도 사실상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비정규직과 청년의 정당을 표방했지만 실제로 그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은 그다지 없었다. 물론 이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워낙 조건이나 처해 있는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당장 개입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개입했어야 했다. 투쟁에 대한 연대든, 청년당원에 대한 교육이든, 장시간 노동 등 고용 관련 핵심문제에 대한 이슈화든 당장의 표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할 것은 많다.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할 말은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표와 돈에 대한 고려 때문에 거의 할 말을 하지 못했거니와 최근에는 아예 민주노총에 끌려 다니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되거니와, 민주노총이 무조건 비판받아야 할 조직도 결코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진지하게 혁신을 고민하는 사람들 또한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민주노총의 혁신을 강력하게 촉구했어야 한다. 원래 직접적인 내부자는 오히려 강하게 말하기 어려운 법이다. 노동운동의 대의에 동의하고 민주노총에 우호적인 외부자 쪽에서, 민주노조운동이 혁신될 때만이 대표성과 재생산의 위기를 극복하고 제대로 된 노동운동으로 전진해나갈 수 있음을 (당장은 일정한 비난을 받을지라도) 진지하게 고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보신당의 전 지도부는 당장의 비난과 악영향이 무서워서 이를 회피했다. 한마디로 비겁했던 것이다. 민주노총과 진보신당의 전 지도부였던 모 유명 정치인은 어느 인터뷰에선가 전혀 다른 논리를 펴면서 자신이 비겁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가 진정으로 비겁했던 것은 오히려 이 지점이었다.

결국 다른 사람 탓할 것 없이 진보신당 스스로가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처음 창당 때 내세웠던 가치들이 지난 3년간 거의 실천되지 않았음에 대해, 무엇보다도 그 가치에 기대하고 새로이 입당했거나 지지해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이런 반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런저런 현실론을 내세운 통합 논의만이 무성하다. 그리고 그 통합 논의에서 진보운동의 혁신에 대한 고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는 설사 통합이 잘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이 오히려 운동의 혁신을 늦추고 알량한 기득권에 안주하다가 대표성과 재생산의 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혁신 없는 통합은 무의미하다

필자는 이른바 강경독자파로 분류되지만 통합에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필자는 몇 번 밝힌 바 있듯이, 탈당 이유가 종북주의나 패권주의 때문이 아니거니와 현재의 통합 논의에서도 종북주의나 패권주의가 일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종북주의나 패권주의는 겉모습일 뿐, 혁신을 거부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는 것은 종북주의나 패권주의 때문이 아니라(대다수의 국민은 그런데는 관심도 없다), 그들 또한 그간 획득한 알량한 기득권에 안주하려 할 뿐 진정으로 가난한 이들과 젊은이들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운동의 중장기적인 발전과 이를 위한 혁신을 고민하지 않는 이들은 이미 진보가 아니다. 따라서 어떠한 반성이나 혁신도 없이 이런 세력들과 무조건 통합하는 것 역시 이미 진보대통합이 아니다.

제대로 된 반성과 혁신이 전제된 통합이라면 필자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재의 통합 논의는 전혀 그런 방향이 아니다. 그냥 현실이 어려우니까 통합하자는 이야기 외에는 반성도 없고 혁신도 없다. 이후의 통합논의과정에서 진지한 반성이나 혁신이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간의 진행상황을 볼 때 매우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차라리 스스로를 반성하고 혁신을 고민하는 사람들끼리 당적에 관계없이 선결집하는 것이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일인 것 같다. 진보신당이건 민주노동당이건 사회당이건 비제도권 좌파건 관계없이 말이다.

진보의 재구성은 혁신으로부터 출발하며 진정한 진보통합 역시 혁신으로써만 가능하다. 통합이 아니라 혁신이 우선이며 혁신 없는 통합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유해하다. 이것이 필자가 이른바 ‘독자파’인 이유다.


이름   비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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